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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자 교육자인 카메이 난메이와 타카바 오사무

늘은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에 걸쳐 의사이자 교육자로 살았던 두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소개할 사람은 카메이 난메이(1743~1814)입니다. 사와라군 메이노하마(지금의 니시구 메이노하마)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카메이는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공부했고 열아홉 살에 상경해 의학과 유학을 배웠습니다. 그 후 후쿠오카로 돌아와 지금의 토진마치에서 병원을 개업해 의사로 일하며 공부방 ‘카메이주쿠’도 열어 제자를 육성했습니다.

그러한 활동을 통해 좋은 평판을 얻게 되어 후쿠오카번의 유의(儒醫, 유학자이자 의사)로 발탁되었고 신설 기관 칸토관의 초대 학장으로도 취임했습니다. 시카노시마에서 발견된 금인(金印)에 대한 학설을 그 누구보다 빨리 발표하는 등 다양한 활약을 펼쳤지만, 후일 이로 인해 논란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칸토관마저 화재로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여러 곤경에도 불구하고 아들 쇼요와 함께 카메이주쿠를 재개한 결과, 일본 전역에서 학생들이 몰려왔다고 합니다.

이 카메이주쿠에서 공부한 제자 중 한 명이 타카바 오사무(1831~1891)입니다. 후쿠오카번의 안과 의사 집안에서 딸로 태어났지만,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남자아이처럼 교육받았던 여성 유학자였습니다. 카메이주쿠에서 공부를 마친 후 지금의 하카타역 부근 인삼밭터에 공부방을 열었습니다. 카메이 난메이와 마찬가지로 의사이자 교육자로서 일하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카메이 난메이와 그의 아들 쇼요의 묘는 추오구 지교의 조만사 경내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절에 남아 있는 정문은 카메이 부자가 활약했던 에도 시대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토진마치의 칸토관터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한편 타카바 오사무의 묘는 하카타구 치요의 소후쿠사에 있으며 카츠 카이슈(무사, 정치가)가 묘비명을 썼습니다. 하카타역 근처 공부방터에도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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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Fukuoka City
Published: Oct 6, 2020 / Last Updated: Oct 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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